어느 날 친구에게 톡이 왔습니다.
모닝: "나오미, 나 잘렸어."
나오미: "왜? 코로나 때문에?"
모닝: "몰라, 해고됐어."
나오미: "어머 웬일? 어떻게?"
모닝: "뭐, 잘됐어. 나 제주도 가서 한 달 살다 올 거야."
나오미: "한 달 살기?" "좋겠다. 대박 부럽다."
모닝: "벌써 에어비앤비로 방도 구했어."
나오미: "나 주말에 간다?!"
회사에서 해고된 친구는 그 길로 바로 제주도로 날아갔습니다. 친구는 제주도 행원리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했습니다. 걱정도 되고, 호기심도 생겨 저도 평일 근무 끝나고 바로 제주도로 갔습니다. 찍어준 주소로 1시간 정도를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칠흑 같은 어둠에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습하고 짭조름한 냄새와 촉감이 느껴졌습니다. 친구는 휴대폰 조명에 의지해 저를 마중 나왔고 아직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밖을 보니 뿌연 안개와 함께 밭들이 보이고 커다란 바람개비가 많이 보였습니다. 바닷가가 지척에 있다는 친구 말에 빨리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날의 피곤함 때문에 침대에 다시 누웠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더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와 여기 진짜 조용하다. 어쩜 차 소리가 하나도 안나. 나는 더 잘래. 잠이 너무 잘 온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멍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친구가 시장에 가보자고 합니다. 때마침 5일장이 열리는 날이니 뭔가 볼거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며, 이곳의 만능 버스 201번을 타고 세화 시장으로 향합니다. 버스를 타고 있으니 새까맣게 그을린 할머니들이 정거장마다 타시면서 "혼저옵서예" 하십니다. 정말 쓰는구나 신기하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싶은데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친구와 저는 현지인을 보며 신기해합니다. 여행 온 거 느낌 난다.
시장을 둘러보니, 과일 파는 집이 많았고 직접 농사지은 파프리카를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특이한 것은 없어서 이따가 고구마랑 감자 좀 사가자며 점심을 먹고 시장 앞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제주바다는 돌이 까매서 인지 뭔가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물 색과 대비가 되어 조금 무섭기도 하고 푸른 느낌의 동해바다와는 또 달랐습니다. 이끼인지 모를 초록과 해조류 갈색, 황톳빛 모래가 대조를 이루어 화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강렬하게 나오고 정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바다였습니다.
동네 구경해보려 마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가는 곳마다 케이트볼 연습장이 있었고, 논밭과 돌담. 파란 지붕이 있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돌담이 참 멋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저거 안 쓰러지나? 어떻게 쌓았는지 궁금했습니다. 흙 같은 걸로 붙였나 해서 살짝 들어보니 들렸습니다. 그리고 말이 묶여 있었고, 제주 당근을 와작와작 씹어 먹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말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서울 촌년들이죠.
해변도로 따라 집에 걸어가 볼까? 하는 친구 말에 그러자며 걷기로 합니다. 이 날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가 다리가 정말 아팠습니다. 2시간가량을 걸어서 집에 왔거든요. 오는 길에 해녀분들 일하는 표시인 주홍색 부표가 많아 뭐 수확하시나 궁금했는데, 답은 천지에 깔려있는 붉은 해조류였습니다. 온 찾길에 울긋불긋한 게 널려있습니다. 이게 뭘까 궁금했는데 어떤 아저씨들 하는 얘기를 듣고 한천의 원료인 우뭇가사리인지 알게 됐습니다. 해녀분들이 수확하고 남자분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옮기고 하는데 왜 남자들은 바다에 안 들어갈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제주도 여자들이 생활력이 강하다는데 어쩌면 모계 사회이었거나, 여인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도 투어 가이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배도 고프고 저녁시간도 되어서 오는 길에 처음 먹어보는 우럭튀김과 우도 땅콩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해변도로에 민경이네 식당이 있는데 건물 내부가 크고 깔끔하게 잘되어있습니다. 우럭튀김은 큰 등뼈를 제외하고 다 먹을 수 있는데 끝까지 바삭바삭한 게 별미였습니다. 물회도 전문인데 둘이 먹기엔 양이 많아 내일을 기약하고 맛있게 먹고 나왔습니다.
동네 어귀에 들어와 아직 익숙지 않은 골목을 들어가 보니 또 집집마다 나름 돌담을 이렇게 귀엽게 꾸민 곳도 있네요. 아름다워 한 장 남겨봅니다.
마무리하며, 자유로운 철학을 가진 친구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노후 걱정에 연금하나 더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때에 친구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결정했습니다. 뭐가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쳇바퀴 같은 삶,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햇빛 볼 일이 없어 비타민D를 챙겨 먹고 잠이 듭니다. 차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새벽에도 여러 번 깨곤 합니다. 아무리 암막커튼을 치고 자도 각종 전자제품 불빛에 잠을 설치곤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무엇이 없어도 잠이 너무 잘옵니다. 일어나면 개운합니다. 햇살이 알람이 되어 눈도 잘 떠집니다. 그런 걸 느꼈습니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모든 게 자연스러워지는구나. 돈을 벌면 조금 외곽에 단독주택에서 살아볼까 생각을 했습니다. 아침에 햇살이 잘 드는 곳, 밤에는 인공조명이 없는 곳, 조용하고 자연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말이죠.
요즘 트렌드라는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서 제주도 한 달 살기 어떠세요?
월정리 해변이 지척에 있고, 편의점과 각종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제주도 시골을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해변도로와 인접해 있어 산책과 조깅, 자전거 투어도 가능합니다.
201번 만능 버스가 있습니다. 시내까지 1시간. 아저씨들이 운전을 잘하셔서 50분에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버스노선이 잘 되어 있어 차가 없이도 어디든 다닐 수 있습니다.
시내에는 다이소와 유니클로, 스타벅스, CGV 등 다양한 인프라가 있습니다.
시내 에어비앤비보다 방값이 조금 저렴합니다.
개성 있는 카페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안개 낀 새벽이 사무치게 아름답습니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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