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의 마지막 미쓰고와 나는 효자동 카페를 가보기로 했다. 지난주에도 만나 여의도를 갔던 터라 나올까 말까 고민하는 양평 사는 미쓰고는 심심하다는 나의 발악에 기꺼이 서울행 기차를 타 주었다. 여름의 성수기라 길이 많이 막힌다며 원래 보기로 했던 시간에 한참 뒤에야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만났다. 초록버스를 타고 경복고교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웬 경찰이 이렇게 많은지 한 남자분이 카페를 알려주었다. 무궁화 공원 주변 간판이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카페가 있었다.
브레이크가 하루에 두 번 있어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하고 저녁과 요일마다 다른 예약제가 있어 잘 확인하고 가야 한다. 우리는 다행히 30여분을 남겨두고 메뉴를 고를 수 있었다. 식사는 금방 하니까 이곳의 분위기와 음식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실내는 널찍했고 오픈 주방이었다. 한편에는 식료품 선반이 있었고, 긴 테이블이 3개 있었다. 한 테이블에는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식사를 막 시작했고 우리가 들어왔다. 메뉴 이름이 생소해서 다 아는 재료지만 잘 읽히지 않았다. 옆 테이블 시킨 걸 참고해서 여름 채소 카레와 파니니처럼 눌러주는 템페 핫 샌드위치 그리고 계절 야채샐러드와 침출식 아이스커피, 시원한 콤부차를 시켰다.
제철음식을 잘 챙겨 먹어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편의상 주로 배달음식을 먹지만 요즘은 의식적으로 집밥을 먹으려고 한다. 빵이나 간단한 식사 대신에 어설퍼도 엄마가 보내준 반찬에 밥을 지어먹고 있다. 그래서일까? 체중도 줄고 피부톤이 좋아졌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먹기 싫은 음식은 안 먹는다. 이것은 매우 본능적인 것인데 나는 골고루 다 잘 먹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혈액으로 검사하는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를 해봤는데 결과를 보니 대부분 편식했던 음식들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지연성 알레르기는 급성 알레르기와는 달리 서서히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먹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 이 결과에서 유제품과 붉은 육류, 가금류 등이 알레르기 반응이 높게 나왔다. 나는 평소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먹으면 탈이 나곤 했는데 고기는 먹어야 하는 거니까 그냥 먹었던 것 같다. 외식 메뉴도 사실상 고기가 대부분이고 집에 가도 엄마는 고기를 먹여야 잘 먹였다고 생각하니까. 먹어왔는데 몸이 간지럽거나 탈이 나거나 습관성 두통 등이 다 연관이 있었다. 체질에 맞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몇 해전부터 채식에 관심이 생겼는데 채소가 주는 다채로운 색과 식감이 좋았다. 그래서 비건 카페도 찾아가고 쿠킹클래스도 듣곤 했었다.
요즘은 비건 카페가 우리나라에도 제법 많이 생긴 것 같다. 몇 해 전 발리에 갔을 때는 비건 카페가 흔하게 있었고 그냥 일반 레스토랑에도 비건 메뉴가 매우 구체적으로 있었다. 비건에도 단계가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정말 복잡한 메뉴판이었던 것 같다. 이후로는 잊고 살다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 안백린 셰프가 나왔는데 그 셰프가 내놓는 음식 하나하나가 작품 같았다. 시각적 자극에 반응하는 나로서는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기만 하고 맛없는 건 아닐까? 의심했는데 뚱 4가 너무 잘 먹는다. 당장 안백린 셰프를 검색해 봤다. 영국 유학을 계기로 건강한 식습관과 식재료에 관심이 생겼으며 동물 윤리에 대한 에세이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를 쓰고 맛없는 채식의 이미지를 깨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요리는 관능적이다. 일단 맛있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위해서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면 그것은 학대 아닐까? 동물에 대한 생각도 나와 같다. 나는 소가 내 친구 같고 돼지가 내 이웃 같다. 점점 더 고기의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일까? 나는 채식에 천천히 다가가 보려고 한다.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소이 아이스크림을 맛볼까 하다가 이내 포기하였다. 예전 어느 비건 카페에서 맛 본 소이 요구르트를 먹고 토할 뻔했던 기억 때문이다. 토한 맛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식은 맛없는 맛. 이게 내 첫인상이다. 비싸긴 정말 비싸고, 맛없긴 정말 맛없는, 채식을 이렇게 해야 한다면 할 수 없겠다 싶었다. 맛이라는 게 처음 경험이 중요한데 나는 다행히도 트라우마를 잘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의 음식은 맛의 균형이 좋다. 신선하기도 하고 담백하기도 하고 간도 잘 맞는다. 음식이 간이 안 맞으면 비위가 상해서 많이 못 먹는데 처음 채식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하면 이곳의 음식을 추천한다. 맛은 매우 직관적이라 이게 맛있는 거야? 추리하지 않아도 술술 넘어가면 맛있는 음식이다. 혀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중반쯤 식사를 할 무렵 이쁜 언니들이 한 팀 더 들어왔다. 핫플인가? 20대 여성들이 온다는 것은 이것이 트렌드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니까, 뒤이어 들어온 연인은 브레이크에 딱 걸려 돌아섰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보니 청와대가 지척에 있었다. 경찰이 많은 이유였구나, 우리는 소화시킬 겸 걸어서 경복궁역까지 갔다. 주변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근처 로스터리 카페 나무사이로에 왔다. 따뜻한 커피를 시키고 책도 뒤적거리다 근황 토크도 하고 다음엔 안백린 셰프가 운영하는 천년 식향 레스토랑에 가보기로 했다. 가격대가 좀 있어 반반하기로 하고. 오늘의 다음 행선지는 서울로 위에 있는 알맹 상점 리스테이션, 제로 웨이스트 카페인데 북극곰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아직 일회용품을 많이 쓰고 있다. 특히 컵, 텀블러를 30회 이상 써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하니 더 열심히 들고 다니자.
나와 미쓰고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이 벌써 20년. 이 시간을 같이 여행도 하고 카페 투어를 하며 함께 공유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누고 비우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죽어야 할까? 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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